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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래]현이와 덕이 "뒤늦은 후회"(최진희가 김정은의 고마운 인사를 받은 노래)

조글로 潮歌网 2020-09-16
 11시 발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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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그 노래 불러줘서 고맙다”… ‘뒤늦은 후회’ 최진희에 깜짝 인사



가수 최진희가 평양공연에서 현이와 덕이 '뒤늦은 후회'를 부른 이유가 알려졌다.

최진희는 1일 밤 평양 동평양 대극장에서 펼쳐진 '남북 평화 협력 기원 남측 예술단 평양 공연'에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애창곡으로 알려진 '사랑의 미로'와 남매듀오 '현이와 덕이'의 '뒤늦은 후회'를 노래했다.


2일 남측 예술단은 이날 오후 점심 식사를 위해 평양 창전거리 옥류관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최진희는 공연에서 자신의 노래가 아닌 '뒤늦은 후회'를 부른 것에 대해 "왜 내 노래도 아닌 걸 불러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어제 김정은 위원장이 저와 악수하는데 '그 노래를 불러줘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해 왜 부르라고 했는지 알겠더라"고 후일담을 전했다. 


'뒤늦은 후회'는 남매 듀오 가수였던 '현이와 덕이'가 1985년 발매한 2집 앨범 '너나 좋아해 나너 좋아해'에 수록된 곡이다. '뒤늦은 후회'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창밖에 내리는 빗물소리에 마음이 외로워져요

지금 내 곁에는 아무도 아무도 없으니까요

거리에 스치는 바람소리에 슬픔이 밀려와요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아서 살며시 눈감았지요

계절은 소리없이 가구요 사랑도 떠나갔어요

외로운 나에겐 아무 것도 남은게 없구요

순간에 잊혀져갈 사랑이라면 생각하지 않겠어요

이렇게 살아온 나에게도 잘못이 있으니까요 


창밖에 내리는 빗물소리에 마음이 외로워져요

지금 내 곁에는 아무도 아무도 없으니까요

거리에 스치는 바람소리에 슬픔이 밀려와요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아서 살며시 눈감았지요

계절은 소리없이 가구요 사랑도 떠나갔어요

외로운 나에겐 아무 것도 남은게 없구요

순간에 잊혀져갈 사랑이라면 생각하지 않겠어요

이렇게 살아온 나에게도 잘못이 있으니까요 



'현이와 덕이'는 누구?

'뒤늦은 후회' 부른 '현이와 덕이' 남매의 비극사



가수 최진희 씨가 평양공연에서 '현의와 덕이'의 '뒤늦은 후회'를 부른 이유가 알려져 화제를 모으고 있는데요. 자신의 노래가 아닌 '뒤늦은 후회'를 부른 것에 대해 "왜 내 노래도 아닌 걸 불러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어제 김정은 위원장이 저와 악수 하는데 '그 노래 불러줘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해 왜 부르라고 했는지 알겠더라"하고 후일담을 전해들었죠. 알고보니 김정일의 애창곡이 최진희 씨의 '사랑의미로'와 현이와 덕이의 '뒤늦은 후회'더라고요.



'뒤늦은 후회'의 원곡자인 '현이와 덕이'는 1975년 데뷔해 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많은 사랑을 받은 남메 가수입니다. '순진한 아이' '꼬마인형' '소녀와 가로등' '너나 좋아해 나너 좋아해'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내놓으며, 뜨거운 사랑을 받았으며.. 데뷔 당시 장현 19세, 장덕 14세로 미국 무대에서 팝을 노래하며, 한국판 카펜터즈로 널리 알리게 됩니다. 이후 TV에 출연하며 '현이와 덕이'로 활동을 했습니다, 장덕은 '현이와 덕이'의 초기 히트곡을 직접 만들어 천재음악소녀로 발돋움했지만 감성적이고 예민한 성격은 가수 활동 중에도 방황햐며 여러 소문에 시달리게 했습니다. 그녀는 1980년 19세 나이에 고등학교를 좋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결혼헸지만 곧 이혼을 하게 되고 그후 아픔을 딛고 미국 테네시 주립대에서 작곡을 전공한 후 귀국해 첫번째 솔로 앨범을 발매했습니다. 하지만 큰 화제를 모으지 못하자 '현이와 덕이'로 다시 활동하며 '너나 좋아해 나너 좋하해' '날 찾지 말아요'로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장덕은 또 다시 힘겨운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요. 지병인 설암으로 시한부인생을 살던 오빠 곁에서 지키며 방황하다 약물 중독에 빠지게 되죠. 그리고는 1990년 2월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사망하게 되는데.. 서른이 안된 28세 나이에 요절했습니다. 여동생의 죽음을 지켜본 장현은 장덕이 죽은후 6개월만에 병세가 악화돼 34세 나이에 사망했습니다. [출처]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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